거짓말과 체벌


어제 둘째 희원이가 회초리로 엉덩이를 다섯 대나 맞았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체벌 중 가장 많은 횟수로 기억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엉덩이를 다섯 대나 맞았을까요?

바로 거짓말때문이었습니다.

그간 희원이가 뭔가 클리어하지 않게 대답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저는 '그래? 그럴리가 없는데... 이 녀석 뭔가 숨기고 있는데...' 하면서도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그냥 넘어가고 넘어가고 했었지요.

그런데 오늘 제대로 걸렸습니다.

아침에 아빠 엄마가 말하기를, 교회에서 유치부 예배 끝나면 식당에 가서 밥 먹고 나서 아빠 엄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지요.

예배 다 끝나고 희원이를 만났는데, 그제서야 빵을 허겁지겁 먹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물었지요?

"희원아, 밥 아직 안 먹었어요?"

그랬더니 희원이가 또 그 전형적인 자신없는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음... 먹..었어요."

"그래? 그럼 오늘 뭐 먹었는데?"

"국수..요."

그러나, 오늘 교회 식당 메뉴는 국수가 아니라 비빔밥이었습니다.

오후 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는데,

희원이는 아직 밥도 안 먹고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있었던 것입니다.

초원이도 교회 도서관에서 책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똑같이 밥을 안 먹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초원이에게 언능 식당 가 보라고 했더니,

이제 식당 끝나고 밥이 없다면서 헛걸음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지요.

그런데 희원이는 밥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아빠 엄마에게 숨기고 싶었는지,

거짓말을 해버린 것이지요.

글쎄요... 밥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왜 숨기고 싶었을까요?

혹시 아빠 엄마에게 핀잔 들을까봐 염려되었던 것일까요?

그런 일로 꾸지람을 들을 일까지는 없겠지만,

"에고, 왜 그랬어.. 제 때 밥 먹지.."

정도 말은 들었을 것 같은데,

혹 희원이 맘 속에 그 정도의 표현도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이 여겨져서

본능적으로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혹 정말 그런 것이었다면,

아이가 실수했을 때에, 저나 아내의 태도나 말이 그간 어떠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아이를 비난하는 것은 아무 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인데 말이지요.

그런 정황을 고려하더라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은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희원이를 언능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디서 회초리를 구해다가는,

희원이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고는,

차분하고도 단호한 말투로,

"희원아, 거짓말은 실수가 아니라 죄란다. 십계명에 거짓말하지 말라고 나와 있는 것 알지? 희원이는 방금 십계명을 어긴거야.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되는거고... 예수님이 바로 방금 희원이 거짓말 한 거 그거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게 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 바로 그것 때문에 말이야...

희원이가 잘못한 일을 넘어가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에요. 방금 밥을 안 먹었는데 먹었다고 하니까 어떻게 돼요? 무슨 밥 먹었냐고 할 때, 국수 먹었다고 또 거짓말을 하게 되잖아요? 거짓말은 원래 그런거에요. 한 번 하면 계속 하게 돼. 희원이에게 손해가 오더라도 사실대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해요.

아빠와 엄마는 거짓말한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지금 엉덩이 다섯 대 맞을거에요. 아주 세게. 자 대세요."

"딱. 딱. 딱. 딱. 딱."

세 대 맞을 때부터 울음이 터졌습니다.

다섯 대를 모두 맞고는 아빠에게 안겼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희원아, 방금 많이 아팠지?"

"응 (흑흑)"

"예수님은 희원이가 거짓말 한 것 때문에, 그거보다 더 세게 맞으셨어. 피가 날 때까지... 우리 이제 기도하자 희원이가 먼저 기도하고 아빠가 기도할게."

희원이는 스스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거짓말 해서 죄송해요. (울먹) 거짓말 한 것 용서해 주세요. (울먹)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빠) "하나님, 우리 희원이가 거짓말 한 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신 것을 믿어요. 그걸 믿는 믿음으로 희원이가 용서 받았음을 압니다. 우리 희원이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희원이가 자기의 실수를 덮기 위해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도망가지 않고 현실을 맞닥들이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아빠로서 얼마나 잘 대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 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고나서 성경에 있는 체벌에 대한 구절을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어요.

특별히 아래 링크가 매우 성경적으로 내용을 정리해 놓았더군요.

GotQuestions.org

질문: 그리스도인들의 자녀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 체벌에 대해 고민이 있으신 분들이 있을 줄로 압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다루어 보겠지만,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양육을 하다 보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이 필요한 경우가 반드시 발생하게 됩니다.

모든 상황에 체벌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체벌이 필요한 경우가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건강한 체벌을 통해 아이가 그릇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부모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부모 외에는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답니다.

선생님들의 체벌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여파를 남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체벌은 다릅니다.

물론 폭력과 체벌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체벌이 물리적인 폭력이 되지 아니하도록 철저한 절제와 사랑 가운데서 주어져야 하겠지요.

또한 체벌 시에 감정적인 폭력이나 언어 폭력이 함께 전달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저희 부부도 그런 부분에서 실수가 있을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네요.

그러나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없으면 어느 특정 부분에서는 아이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폭력으로 번질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체벌을 금하는 것은,

이 쪽 날개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쪽 날개를 자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세상은 징계 없는 사랑을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이 추구하는 바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답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8)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가 있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분의 사랑이 싸구려 사랑이 아닌 것이지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13:24)

체벌의 부작용 때문에 또는 체벌받는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체벌을 포기하는 일은 정말로 그를 사랑하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22:15)

또한 "아이의 마음에 미련한 것이 얽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죄된 본성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한정된 시기(아마도 유초등기)에 있어서 체벌이 죄를 멀리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네가 그(자녀)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3:13)

부모가 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영혼을 스올(지옥)에 내버려두는 일과도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전히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에서는 또한 이렇게 주의사항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성경은 참으로 균형의 극치입니다.

아이들이 노하지 않는 방법과 수단으로 그리고 합당한 시기에 체벌에 주어져야 합니다.

결국 사랑이 키(Key)겠지요.

더불어, 체벌시에 분노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위드'라는 NGO의 설립자이신 이용숙 회장님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분노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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