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출애굽 (2)

2019년 1월 5일 업데이트됨



전에 송용이 호주 시드니와 브리즈번에서 한인들을 위한 자녀 양육 세미나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에게 자녀 양육의 실제적인 팁들을 나누어 드리면서, 교회와 가정이 함께 자녀를 길러내는 처치홈스쿨 사역의 모델도 소개했지요.

당시에 세미나를 주선하셨고 세미나의 내용에 크게 공감해 주셨던 이민교 선교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지금은 민족통일에스라운동협의회(Global Blessing) 대표로 민족 선교를 섬기고 계신데, 그 이전에는 우즈백 카작스탄 선교사로 20년간을 섬기신 분이지요. 그 자녀들은 현지에서 선교사 자녀 학교 등을 다니며 자랐습니다. 더불어, 부모님과 함께 장애인들을 섬기는 사역을 열심히 감당하였지요. 그 따님이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어 미국 수능 시험(SAT)을 쳤는데, 상위 5%에 든 것이 아니겠어요? 게다가 그의 성장 배경 및 활동 내역이 너무나 탁월하다 보니 하버드대학교에서 먼저 입학을 권유하는 연락이 왔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선교사님은 자녀를 하버드에 보내지 않고 한동대학교에 보냈습니다. 송용이 호주를 방문했을 때에, 마침 따님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다가 부모님과 함께 호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아 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요. 송용은 그 따님이 너무나 귀하게 자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밝고 실력있으면서도 부모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러면서 또 아빠 엄마에게 자기 할 말은 다 하더군요. ^^; 송용 안에 ‘하나님, 우리 딸도 이렇게 귀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는 기도가 절로 되뇌어졌습니다.

그 시기는 호주에서 동성 결혼에 대한 찬반 국민 투표가 (우편으로)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동성 결혼에 대해 “YES”로 투표하자는 독려 광고가 거리 곳곳에 붙어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제가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기독 가정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이것이었습니다. 만일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면 공교육에서 동성애에 대한 교육도 보다 노골화될 것인데, 과연 기독 부모들이 자녀들을 공교육에 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부모들은 '그럴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런 시점에 처치홈스쿨에 대한 세미나가 열리니 반응들이 꽤 적극적이었습니다. 세미나를 마칠 즈음, 이민교 선교사님이 호주에 있는 부모들에게 처치홈스쿨을 권유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희 가정이 선교사로서 무슬림권에 살면서 자녀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어요. 거기서 이슬람교를 가르칠 테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이 땅에서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속 공립학교에서 자녀들을 빼 오는 일이 보다 쉽게 생각되지 않을까요? 분명 거기서는 또 다른 종교인 세속주의를 가르치고 있지 않은지요?”

하나의 일화를 더 소개할게요. 카이스트교회 장갑덕 목사님의 아내이신 손정숙 사모님이 전에 미국의 홈스쿨 가정들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홈스쿨로 자라고 있는 어느 자녀를 만났는데, 그 자녀가 너무나 총명하고 귀해 보여서 칭찬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 이 아이는 나중에 하버드에 보내면 참~ 좋겠네요!”

그랬더니 그 부모가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답하더랍니다.

“저희가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곳에 보내겠습니까?”

손 사모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대학들의 세속 교육의 파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거세고 거대합니다. 멋 모르고 자녀를 미국 대학교에 보냈다가 자녀가 신앙을 잃어버리게 된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에서 더 이상 예외가 아니지요. 신실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미국 부모들은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켜야 한다면, 기독교 대학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낸시 피어스 여사는 ‘완전한 진리’라는 책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사상적으로 충분히 대비시키고, 세상의 거짓 진리에 변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놓은 후에, 고등교육 과정에 보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지요.

그런데 다만 그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위의 대화에서 엄청난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대개 우리가 생각하는 기독교 교육의 방향성과, 그 홈스쿨 가정이 생각하는 기독교 교육의 방향성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그 차이의 시작은 매우 미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한 번 살펴 볼까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세상에서의 영향력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거기에 신앙까지 잘 갖춰져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차분히 분석을 해 보면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보다 앞서 갈 때가 많은 형국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해 보면, 그리고 기독교 역사를 돌아 보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이스라엘 백성’, ‘로마 시민권’ 등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육에 있어서 ‘우리가 자녀를 성경적으로 교육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키워낸다’는 명제는 다른 어떤 교육적 가치와도 타협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일이지요.

자녀를 공교육부터 출애굽시키고, 교회에 모여서 부모들이 직접 자녀를 가르치며 양육해내는 처치홈스쿨 사역은 광주의 교회들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대전과 익산에서도 처치홈스쿨이 각각 시작되었지요. 그렇게 부모들이 자녀를 공교육에 보내지 않고 교회에서 함께/직접 키워내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부모들은 자기 내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질문들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럼 사회 생활은 어떻게 하지? 한국 사회는 인맥이 중요한데, 적어도 고등학교는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내가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아무리 세속 교육이라고 해도 선생님들이 더 낫지 않을까?’

‘아이들을 온실 속에서 키우는 것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 나중에 세상에 나가서 오히려 더 적응을 못 하는 것 아닐까?’

때론 우리에게 '우리가 (또는 자녀들이) 세상과 단절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자 할 때입니다. 그런 두려움의 기제가 발동하기 시작하면, 어느 선 이상을 넘어서기가 참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단절”과 “구별”,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위 의문들에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좋으신 우리 주님의 뜻은 “단절”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의 본 뜻이 바로 구별이지요. 구별이라는 것은 따로 떼어 놓는 것입니다. 양들이 많이 있는데 , 그 중 하나님께 드릴 것을 따로 떼어 놓으면 그것이 거룩한 양이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거룩하게 키우려면, 거룩하게 구별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이 세상과 단절되는 일은 없습니다. 송용과 해영은 자녀들이 세상으로부터 단절될까 염려하는 부모님들께 이따금 조심스럽게 반문하곤 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세상과 단절시킬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우리 자녀들은 교회 문 밖에만 나가도 세상과 만나고 있는데요. 놀이터에서 피아노 학원에서 심지어는 교회학교에서 자녀들은 끊임없이 세상과 만나고 있답니다. 우리 자녀들을 세상과 단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중심을 교회와 가정에 두고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겠지요. 그 반대가 되지 않도록 말이지요.”

우리 부모들에게 이 정도 담력이 있었으면 합니다.

‘감히 명문대에 비길쏘냐!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거룩한 자녀를 양육하리라!’

그럴 때에 주님께서 때에 따라 우리 자녀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먼저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 역시 우선 이집트에서 나가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일은 그 무엇보다 거룩한 후사들을 세워가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거룩한 다음세대를 꿈꾸는 우리에게도 교육의 출애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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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낮은울타리 6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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