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뒷담화 vs 아빠 중보기도



어느 식사 자리에서 해영에게 상담이 들어 왔습니다. 그 분은 자녀 교육에 대해서 열정이 많은 엄마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녀를 아름답게 키우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귀한 엄마였지요. 상담은 엄마의 고민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인 즉슨, 아빠와 딸들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아빠가 너무 가부장적이라서 딸 들과 많이 부딪치는데, 중간에 본인이 중재를 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실은 지난 밤에도 새벽 3시까지 딸들과 그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해영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시기에는 어떠세요? 아빠가 딸들에게 너무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아니면 혹 아빠가 이런 부분에서 너무 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나요?”

그랬더니 그 분이 너무 맞다라는 것입니다. 해영은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제 경험입니다만, 솔직히 딸의 힘듦이 제게 더 크게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딸을 위로한답시고 둘이 앉아서는 “아빠는 왜 그러실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에효, 아빠는 너무 권위적이야. 우리가 이해해야지” 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 가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그런 일이 그저 딸을 위로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가서 “딸이 당신을 너무 불편해 하네요. 너무 그렇게 강압적으로는 하지 않는게 좋겠어요” 라며 중재아닌 중재를 하곤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제가 상황을 바르게 볼 수 있도록 조명해 주셨는데, 제가 그동안 해 왔던 일은 딸과 아빠 사이의 중재가 아니라 딸과 함께 아빠를 흉보는 일에 불과했다는 것이었지요. 만약 아내인 우리가 남편을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한다면, 아빠에게 불만을 가진 딸에게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 만약 우리 안에 남편에 대한 불만이 없다면 아빠의 거친 태도에 상처를 받은 딸에게 다르게 반응하지 않을까요? “애야, 아빠가 항상 너를 아프게 했을까? 아빠가 그동안 너를 위해 이렇게도 해주고 저렇게도 해주었는데… 아빠가 너를 위해 만사 다 제쳐놓고 오셨던 것도 생각안나니?” 하며 아이 입장만이 아닌 아빠 입장을 아이에게 대변해 준다면 어떨까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그 엄마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러면서..

“어휴, 실은 지난밤에도 딸이랑 아빠 흉만 보다 끝났었네요.”

자녀들이 “엄마, 아빠는 왜 맨날 이래요?”라는 식으로 물어올 때, 엄마의 반응이 참 중요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칫 아빠를 끌어 내리는 데에 동조하면 절대 안 됩니다. 엄마는 계속해서 아빠의 권위를 세워줘야 합니다. 그럴 때에는 이렇게 대답해 줘 보세요. “어, 그랬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었겠네. 그런데 말이야, 우리 아빠가 그런 분만은 아니란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빠가 워낙 피곤하시다 보니 아무래도 너에게 말이 짧게 나왔나본데, 아빠는 늘 너를 생각하고 계시단다. 아빠가 밖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것도 다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지. 아빠가 우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시지는 못하지만, 늘 우리를 생각하고 계셔. 그러니까 아빠를 오해하면 안 돼. 우리는 아빠에게 순종해야 한단다.”

아빠가 완벽한 존재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빠도 부족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에게 아빠의 권위를 깎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사실!

상담을 요청해 온 그 엄마는 성숙한 분이었습니다. 해영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듣고 있었지요. 지금까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남편의 권위를 깎아 내리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상당히 무거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녀의 불만을 핑계로 남편을 향한 자신의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그 분은 그 날 큰 숙제를 하나 안고 돌아갔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벌써 십수년 동안 그런 패턴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과연 그 부분에 있어서 변화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죠. 그러나 해영과 송용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 고민을 안고 돌아가는 분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어떤 변화가 있고 결국에는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전에 해영이 남편 중보기도를 할 때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지요.

“하나님, 우리 남편이 이런 부분은 참 부족하니 하나님께서 그 부분은 특별히 더 도와주시고…”

어떻게 보면 특별히 어디가 틀린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주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로마서 14:4>”

순간 해영은 벼락을 맞은 듯 했습니다. 해영은 그저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을 향한 정죄와 판단을 기본으로 깔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해영은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하나님, 저는 뭐라고 기도해야 하나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사랑을 구하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해영은 그 때부터 “남편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라고 간구하게 되었지요. 그런 시간을 통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기까지 사랑하셨기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보하시는 중보자가 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 이후 남편을 위한 해영의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남편의 귀한 모습, 부족한 모습, 다 주님이 허락하신 모습이니 주님이 다 사용하시기를 간구하기 시작했어요. 더 나아가 남편의 어떤 부족한 부분 때문에 마음에 어려운 영역이 있어서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 차라리 그런 단점들은 해영의 눈에 안 보이도록 가려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정말 사랑을 주셨어요. 남편의 부족함은 해영의 눈에 잘 안 보이도록 가려 주셨지요. 그 결과 남편을 위해 진심으로 중보기도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해영과 송용 부부는 여러 가정들과 상담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아내들이 ‘남편 원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남편의 돕는 배필로 지으셨는데(창세기 2장), 아내는 끊임없이 남편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면 바랄수록 남편은 더 아내로부터 멀어져가는 것처럼 느껴지니 시쳇말로 아내는 환장할 노릇이지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성경은 아주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창세에 말이지요.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창세기 3:16, 공동번역>

하와의 문제가 오늘날 아내들의 문제입니다. 남편이 내 일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 장(chapter)은 필연적으로 남편 원망의 길입니다. 그러면서 원수에게 너무 쉽게 틈을 주게 되고, 아내들의 마음은 병들어 갑니다.

문제는 아내의 그런 마음 가짐이 자녀들에게도 흘러간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가정에서 아빠는 늘 부족한 존재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우리 남편은 좀 그래요” “니들 아빠가 그렇지 뭐”하는 식의 비아냥이 어디를 가나 자주 들립니다. 아내와 애들은 대체로 잘 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빠가 문제라는 생각… 과연 건강한 것일까요?

그런 사상으로 자란 자녀들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아빠’되신 하나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을까요? 원수는 우리보다 지혜로울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 아빠의 권위를 무너뜨리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지위 역시 금새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원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지혜로 접근해서는 안 되지요. 우리는 말씀으로 싸워야 합니다.

아내들이 창세기 3장에서 2장으로 돌아간다면, 가정에 희망이 있습니다. 아내가 ‘그래, 내가 돕는 배필로 지으심을 받았다면, 나는 돕는 배필로 살겠노라’라고 다짐하는 순간, 그 때부터는 큰 자유가 임합니다. 해영은 ‘이건 원래 내가 다 해야 하는 일이구나. 남편이 나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편을 도와야지’라고 생각하는 ‘비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부재중일 때도 늘 자녀들에게 남편의 임재(presence)를 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얘들아, 오늘은 아빠가 출장을 가서 여기에 안 계시지만, 아빠는 늘 우리 가족을 생각하고,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단다. 우리 모여서 아빠를 위해 중보기도하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지만, 실제 그 분은 하늘 나라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임재를 상기시켜 주고 계시지요. 그런 면에서 엄마는 가정에서 성령님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지는 않나요?

“거 봐라 얘들아. 예수님이 우리랑 같이 있겠다고 하시고는 늘 이렇게 약속을 못 지키고 계시잖니? 에효, 그냥 너희들이 이해를 하렴.”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아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내들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래도 우리 남편은 신앙적으로나 생활면에서나 너무 부족한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요. 바로 그런 분들을 살려내기 위해, 송용과 해영은 이렇게 조언해 드리곤 합니다.

“남편의 어떠함을 변수로 놓지 마시고 상수로 놓으세요. 남편이 변해야 내가 산다는 생각에 몰입되어 있으면, 결국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잖아요?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말씀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일하실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돕는 배필로 돌아갑시다. 그 길이 진리의 길입니다. 그 길이 나도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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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낮은울타리 2018년 3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아빠 #뒷담화 #권위 #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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