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을 위한 희생과 도전의 길



우리 나라에 복음화율이 90%에 이르는 섬이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신가요? 그곳이 어디인가 하면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입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 곳은 자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요. 영육간에 아름다운 곳, 그 곳이 바로 증도입니다.

이 지역의 높은 복음화율은 고 문준경 전도사님의 열매입니다. 문 전도사님은 젊은 시절 남편에게 버림 받아 과부가 되었고, 삯바느질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음을 전해 듣게 되었고, 인생의 구원자이신 예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학을 공부하고 사역자가 되었고, 고향인 신안군으로 돌아가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당대 유명한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지요.

당시 우리 나라의 어촌은 매우 척박한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사역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곳이었습니다. 아침에 여자들이 보이면 고기가 안 잡힌다며, 여자들은 배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문화가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곳에서 문 전도사님은 증도뿐만 아니라 근처 많은 섬들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복음을 증거하고, 기도처들을 세웠으며,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 년에 고무신 한 켤레를 신었을 때, 문 전도사님은 일 년에 고무신 아홉 켤레를 신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만큼 많은 길을 끝도 없이 걸어 다니며 헌신적으로 사역하신 것이지요.

문 전도사님은 6.25전쟁 시기에 공산당과 그 추종자들에게 죽창과 총탄을 맞고 순교하셨습니다. 죽지 않아도 될 분이셨는데, 섬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며 스스로 사지로 찾아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목숨을 잃게 된 분이시지요. 우리 시대의 많은 신앙인들과 사역자들이 이 분의 영향을 받아 주님의 길을 따라 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이 CCC의 고 김준곤 목사님이시랍니다.

또한 증도의 부모님들은 그 주위 다른 지역들의 부모님들보다 교육열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시쳇말로 ‘허리 띠 졸라 매고’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증도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신앙인들도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당시 어촌과 농촌에서 자녀들은 가정의 생계를 위한 소중한 노동력으로 간주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생계에 있어서 큰 손해를 감수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지요.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 일(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 당시에는 생계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큰 도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증도의 부모님들은 그렇게 자녀를 위한 희생과 도전의 길을 택했습니다. 좁은 길로 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그 열매는 그 분들의 그러한 ‘남다른’ 선택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남다른’ 선택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을 학교, 학원에 보내는 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남다른’ 길이 아닌 것이지요.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더 많은 교육과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스스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길을 택합니다. 맞벌이도 마다하지 않지요. 부모가 자기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 자녀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면 그만인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자녀들을 위한 ‘남다른’ 선택은 무엇일까요?

해영의 대학원 친구 중에 절친한 믿음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회사에 들어갔고, 각각 자기 분야의 부서에 배치되었습니다. 해영이 먼저 결혼하고 그 친구가 이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러던 중 해영은 첫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회사를 그만 두고 선교지(몽골)에 나가게 되었고, 그 친구는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연년생으로 아이 세명을 낳아 기르게 되었지요. 그 회사는 육아 휴직 제도가 잘 되어있어 충분히 아이들과 함께 있어줄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맞벌이니 아주 풍요롭게 아이들을 키웠다고 친구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첫 아이가 8살이 되어 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되고, 학습 부진으로 아이가 학교 생활을 힘들어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친정 엄마가 딸네 집에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도우셨고, 자신도 아이 마다 1년씩 육아 휴직을 내면서 열심히 길렀는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에 해영을 만났습니다. 친구의 친정 엄마는 “여기서 우리 딸이 직장을 그만두기에는 딸의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고 계셨지요.

해영은 ‘우리나라 전문 직장 여성들의 현 주소'를 심각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사뭇 진지하게 여자가 결혼하면 새로운 두 가지 인생이 생기게 되는데 하나는 남편을 섬기는 '종'의 인생이고 두번째는 아이를 키우는 책임을 맡은 '엄마'의 인생이 있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두 가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나아가자 친구는 이내 불편한 기색을 하며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럼 '내' 인생은 뭐가 되는 거니? 하나님이 우리를 30년간 공부하게 하고 직장을 허락했고, 그 직장 안에서 원하시는 사명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니?”

해영은 대답했습니다.

“그래, 공부를 허락하셨고, 회사 안에서 네가 충성되이 일하며 기도하며 이뤄냈던 것도 귀하지. 하지만 결혼해서의 네 인생은 바로 남편을 잘 섬기고, 아이를 양육해 내는 것이란다. 이것은 하나님이 네게 주신 네 사명이자 인생이야. 물론 그런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네 전공을 살릴 수도 있겠지만 우선 순위를 잘 생각해야 되지. 내가 봤을 때 지금 너희 아이는 엄마의 건강한 양육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영적, 지적, 육적으로말이야.

친구야... 네 인생이 직장을 그만 두면서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아. 오히려 진정한 네 인생은 현숙하게 남편을 섬기는 것과 사랑과 인내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것으로 꽃을 피우지. 그게 진정한 네 인생이야.”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쉽게 듣지 못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 친구는 참 많이 골똘했지만, 이내 해영의 말을 인정하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더 많은 재정을 벌기 위해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대신 희생합니다.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마땅히 부모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다른 ‘좋은’ 곳에 맡겨서 가르치는 일을 선호합니다. 지성 교육은 학교에, 영성 교육은 교회에, 감성 교육은 미디어에 맡겨 놓고 있지요. 그러나 이것은 결코 성경적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교육을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신명기 6:6-7)

그렇기에 부모가 직접 자녀를 가르치고 돌보아야 합니다. 교회 전도사님이 우리 아이들의 신앙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학교와 학원만 보내면 아이들이 자동으로 무엇인가를 배울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약해서도 아니고 전도사님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학교와 학원이 나빠서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부모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고, 인내와 끈기로 그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오직 부모만이 무한한 사랑과 인내를 갖고 자녀를 훈육하며 지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세상을 디자인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도 허다합니다. 그렇다 보니 부모들이 너무 바쁩니다. 또한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들의 영혼육을 직접 챙기는 일을 쉽게 포기합니다. 삼시 세 끼 엄마 밥만 제대로 먹어도 아이들의 육체가 얼마나 건강해지는지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저희 부부는 부모들에게 과감하게 조언합니다. 맞벌이 그만 두시라고, 커리어 포기 하시라고... 그리고 자녀들 돌보라고 말입니다. 돈은 나중에라도 벌 수 있습니다. 자녀들 잘 키워 놓고 나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다시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지금이 아니면 결코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녀들 숙제 봐 주는 시간이 아까워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 새끼 입에 집 밥 넣어 주는 일이 세상 최고의 보람이어야 하겠습니다. 자녀들에게 직접 말씀과 기도를 가르치는 일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르심이 아닐 까닭이 있나요?

우리 부모들은 그런 일들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음을 ‘당연시’ 여겨야 합니다. 내가 귀찮아 하는 일(자녀 교육)을 그 누군가 더 잘 해 줄 것이라는 망상에 속지 맙시다. 당연한 의무로부터 달아나는 삯꾼 부모가 되지 말고, 생명까지도 희생하여 자녀를 돌보는 선한 목자 부모가 됩시다.

그가 달아나는 것은 삯꾼이므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13, 현대인의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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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낮은울타리 8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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