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상)

“설겆이는 엄마가 할 테니, 너는 들어가서 공부하렴.”


부모가 자녀에게 종종 하게 되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아빠, 엄마가 집안일을 할 터이니, 너는 가서 네 할 일을 먼저 하라는 것이지요. 다 자녀를 위해서 하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게 가정의 일보다 자신의 일을 먼저 챙기는 삶의 패턴을 연습하며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사실이죠.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죠.


“아빠, 죄송해요. 오늘 이사하시는데, 저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못 가볼 것 같아요. 포장이사니까 괜찮으시죠?”


왜 이런 자녀로 자라난 것일까요? 아마도 부모들의 이런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돌아봅니다.


“저희 아이가 시험 기간이라 이번 어머님 생신 때는 못 내려갈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가 나이가 들수록 가정의 일로부터는 멀어지는 패턴이라니요. 특별히, 어렸을 때 공부를 잘 했던 자녀일수록 더욱 그런 패턴이 두드러지는 것을 봅니다.


송용 역시 그런 문화에서 자라났습니다. 송용이 공부를 잘 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기까지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지요. 송용의 부모님은 공부를 잘 했던 송용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셨습니다. 식사 후에 설겆이 한 번 시킨 적이 없을 정도였죠. 그래서인지 송용에게도 그런 패턴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맞춰 주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무의식 중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결혼 후에 아내 해영과 살면서야 그런 부분을 깨닫게 되었지요.


송용과 해영이 선교지에 살면서 국내에 체류할 일이 적다 보니,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이런 저런 서류나 행정 처리를 부탁드려야 할 때가 잦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용이 부모님께 좀 무리한 일처리까지 부탁을 드리게 되었나 봅니다. 그 과정에서, 해영이 송용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부모님에게 이 일까지 시키는 것은 제 생각에는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여보는 부모님이 여보를 도와 주시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송용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송용은 부모님의 시간과 노력을 자신의 자원(resource)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지요. 부끄러웠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여보. 내가 그런 부분을 미처 생각 못 했네요. 이 일은 좀 어렵더라도 내가 다른 방법을 찾아 보도록 할게요.”


우리 자녀들, 송용처럼 자라지 않으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집안일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가정에서 가족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되어져야 하는 일들이 있지 않은지요? 그 일들은 가족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 일을 꾸준히 감당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의 일원으로서 공헌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좋습니다.


첫째, 각 자녀는 가정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있고, 꾸준히 그 일을 맡아 수행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 중의 하나를 맡는 것이지요.


  • 하루에 한 번 신발 정리

  • 식탁을 차릴 때에 숟가락 놓기

  • 세탁이 끝난 빨래를 건조대에 널기

  • 매일 저녁 설겆이

  • 하루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 분리

  • 하루에 한 번 거실을 쓸고 닦기


그때그때 부모가 맡긴 일을 해 내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자기가 맡은 일이 하나씩 있는 것은 자녀에게 아주 좋은 훈련이 됩니다. 그렇게 집안일을 꾸준히 해내는 자녀는 자존감이 매우 높습니다. 자신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일정 부분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을 감당해내고 있는 사람은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건강한 자아상을 주시지요.


저희 가정 자녀들의 집안일 분담 현황은 아래와 같습니다.

초원 (12세): 하루에 한 번 세탁실 정리 (세탁이 끝난 옷을 개어서 옷장에 넣어 놓는 일 포함)

희원 (10세): 하루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 분리

예원 (7세): 식사 전후에 식탁 정리 (숟가락 세팅 포함)

지원 (5세), 도원(3세): (청소 시간에) 거실 바닥에 널부러진 물건들을 제 자리에 가져다 놓기


그 외에도 부모의 지시가 있을 때마다 가정에 필요한 일들을 수시로 감당하지요. 집안일은 섬김을 훈련하는 자리입니다. 평소 집안일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잘 섬길 수가 없겠지요? 게다가 집안일 훈련이 안 된 사람이 결혼을 해서 배우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집안일로 가정을 섬기며 자라나는 자녀는 결혼의 준비, 부모가 되는 훈련을 함께 감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집안일은 한 자녀가 성인으로 빚어지는 데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문화에서는 어릴 때는 어리다고 놀게 하고, 커가면서 자기 할 일 먼저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집안일은 부모가 도맡아 하지요. 그러가가 부부간에 집안일을 누가 더 많이 하고 어떻게 했느냐를 하는 문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다시 돌아볼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어려서부터 가르치라<잠언 22:6>”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자녀들이 어릴 때 많이 놀아야 한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학습을 시키기 시작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그런 말이지요.

어려서부터 노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필요한 일을 하는 아이가 되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안일도 어려서부터 시키는 것이 옳지요. 어려서 놀고 자란 아이는 커서도 노는 것이 우선입니다. 어려서 섬기고 자란 아이는 커서도 섬기는 이가 되지 않겠어요?


전에 저희 가족이 모두 집에 있는 날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장난감으로 달려가서 장난감 파티를 벌인 것이 아니겠어요? 송용은 자녀들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녜요. 분명히 뭔가 할 일이 있을텐데요. 지금은 장난감 정리하고, 이따 오후에 아빠 허락 맡고 한 시간 정도 장난감 놀이를 하도록 해요. 그 전까지는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찾아서 하도록 하세요. 알았지요?”


그랬더니 첫째와 둘째는 자기가 맡은 집안일을 시작했습니다. 셋째는 책상 앞에 앉아서 성경 필사를 시작하더군요. 넷째는 아빠에게 오더니, “아빠 저는 기도할래요” 하더니, 거실 한 쪽에 가서 기도를 하고 왔습니다. 물론 막내는 여전히 별 생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지요.

참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풍경이었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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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낮은울타리 2018년 9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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